스승의 날 편지 두 장을 소개합니다. 연영과와 미술과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이종석 방민지 두 선생님이 지난 15일 스승의 날 행사 - 사제동행-에서 발표한 내용인데, 그냥 그자리에서 한 번 듣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남기기로 하고 어렵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격려를 보내 준 그 사랑에 고마움을 표하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몇 주 전, 오늘 아침의 이 귀한 행사를 위해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을 때, 전 한참 연습장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지요. 차분히 오늘 행사의 뜻을 말씀해 주시고 그래서 이종석 선생이 와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때, 마음으로는 부담보다는 죄송스런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1992년 10월, 세상은 온통 휴거가 일어난다고 외치는 어떤 종교 집단의 주장 때문에 시끄러웠던 그 때, 저는 하필이면 그들이 주장하던 휴거일에 실기 시험을 치렀답니다. 한 번도 연기 교육을 받아보지도, 정식 연극 한편도 보지 못했던 제가 꿈 하나만 믿고 무모한 도전을 했었지요. 또 하필이면 연극 영화과 수험생의 제일 앞 번호인 4001번을 받고 그저 기도와 간구로 선생님 앞에 섰을 때 지금보다 젊었던 모습의 선생님들께선 저를 보고 웃어 주셨지요. 노력과 준비에 비해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그 날 아침 선생님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계원에 감사히 입학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지금은 너무나 좋은 친구가 되어버렸지만 그 땐 그렇게 무서웠던 선배들과의 갈등, 그리고 우정. ''예술'' 이라는 두 글자가 덧 붙여 쓰인 스쿨버스로 인해 타고 내릴 때 마다 ''그래 난 예술가야, 그럼 뭘 해야 하지?'' 하는 학교생활의 열정, 아주 아주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였던 몇몇 여학생들을 향한 철없던 짝사랑(사실 이름을 대면 다 아시는 아이들이라 차마 이름까지는 적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알고 계신 것 보다 한두 명 더 많을 수도 있지요..^^)형들과 사고치고 군포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그 새벽에 놀라 달려오셨던 박기원, 김성동 선생님과의 일들, 3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참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성장 과정 가운데 제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아빠와 같은 역할을 제게 해주셨지요..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선 이천우 목사님과 저를 ''할렐루야''라고 부르셨어요. 그랬지요. 그 땐 그렇게 신앙도 뜨거웠고 등하교 길에 기도실에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었습니다. 제가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는 가장 큰 것은, 선생님들의 칭찬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선 제가 어떤 선택을 하던(연애 빼고) 늘 그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해 주셨고, 그 선택의 결과보다 과정을 이해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지요. 선생님들께서 불러주셨던 할렐루야와 칭찬이 저 스스로를 더욱 곧게 세울 수 있는 힘이었고, 그 믿음과 칭찬에 응하고자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계원에 다니며 저는 2분의 엄마와 한분의 아빠, 그리고 한분의 멘토를 만났습니다. 엄마 중 한 분은 김영옥 선생님, 또 한 분은 안영숙 선생님이세요. 이 두 분의 엄마 또한 제게 늘 용기를 주셨고, 학교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들 노릇 변변히 못하는 저를 볼 때마다 안아주시고, 먹여주시고 쓰다듬어 주시지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애국 조회 시간에 학생회 당부 사항을 제가 공지했던 때가 있었지요. 조회를 마치고 올라가는데 김영옥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 세우시더니 ''종석아, 말이 너무 빨라. 그러면 전달이 잘 안돼. 너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될 사람인데 천천히 하나하나 말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해.'' 라고 하셨어요. 18살 어린 저에게 그 말씀은 옥토에 떨어진 귀한 씨앗이 되었고 ''그래, 많은 사람 앞에 설 거야''라는 다짐을 갖게 하셨지요. 안영숙 선생님께서는 2007년, 27기 아이들과 ''벽을 뚫는 남자''라는 정기 공연을 올렸을 때, 그렇게 기뻐하고 행복해 하시며 안아주시던 모습이, 공연을 또 보시러 오시던 그 모습이 제게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하셨지요. 이 두 분의 엄마를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학교에 올 때마다 가서 인사드려라 보고 싶어 하신다 말씀하셨던 우리 아빠 박기원 선생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내리사랑을 받아온 저는 아주 못된 불효자가 되었을 겁니다.
이런 사랑들을 받아왔기에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선생님들의 권유가 저는 무서웠습니다. 내가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받은 만큼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저는 선생님들의 그 사랑의 깊이와 졸업한 모든 학생들을 향하여 아직도 진행 중인 선생님들의 그 마음을 담을 그릇이 못되어 부르심에 충실히 답하지 못하고 그저 밖으로만 지금까지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보니 선생이 된다는 것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목회자의 사명과 같은 ''Calling''에 대한 분명한 자기 결단과 희생이 없으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한 영혼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지 않으면 참 교육은 이뤄질 수 없음을 아이들을 만날 때 마다 느끼고 또 자책합니다. 부모님들께서 너희도 자식을 낳아봐야 우리 마음 안다고 하셨던 그 것을,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지도해 보고나서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고되게 저와 저희를 가르치셨고 또 지금도 그러하고 계신지를...
수다 그만 떨어야 되는데, 요말은 생각나서 또 할게요. 제 결혼식 때, 박기원 선생님께서는 신랑 측 초라해 보일까봐 연극영화과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주셨지요. 신부 측은 몇 개가 서 있었는데, 그래도 모교에서 결혼식 당사자 이름으로 온 제 것 하나가 훨씬 더 당당하고 기를 살게 했답니다. 또 지난 해 청 이야기를 국립극장에 올릴 때, 어린 연출 기죽지 말라고 또 화한을 극장 정문에 떡하니 세워 주셨지요.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면 수다가 그칠 수 가 없어요.
몇 주 전 아침, 선생님께서 전화하셨을 때, 저는 감사한 마음보다 죄송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선생님은 바쁜 척 하는 아들에게 혹시라도 불편할까봐 조심스럽게 오늘 아침에 대해 말씀 하셨지요. 아이고... 이놈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저렇게 배려하실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열일 제쳐놓고 가야지요. 선생님 부르시는데요..
선생님,
아직도 전 제 몸 하나, 제 식구 하나 간수하기 어렵지만, 선생님들의 칭찬과 믿음을 통해 더 욱 용기를 내어 한 걸음씩 급하지 않게 걸어 나가겠습니다. 지난 17년간 선생님들의 칭찬이 저를 키웠고, 앞으로의 17년도 선생님들의 믿음이 저를 키워갈 것입니다. 선생님들께 배우고 받은 그 믿음과 사랑을 저도 만나는 학생 하나하나마다 온 마음으로 나눌 수 있도록 더욱 애쓰겠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들과 쌓아온 삶 보다 앞으로 더 행복하게 나눌 삶이 더 많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나눔이 더 복되고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여러 아이들의 선생으로, 연출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셔서,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201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아침
제자, 종석 드립니다.